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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박사 문서
불평등과 인습에 맞서 평생을 싸운 선각자
최고관리자 2009-08-13 15:32:56
조회수 : 2,438
불평등과 인습에 맞서 평생을 싸운 선각자
1998년 12월 17일 우리는 불우하고 소외받는 여성들의 큰 어머니 이태영 박사를 잃었다. 국내 첫 여성 변호사로서 가정법률상담소를 세우고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인습에 맞서 평생 싸워온 선각자 이태영 선생. 그가 84세를 일기로 서울 봉원동 자택에서 별세한 것이다.
우리나라 남녀평등의 기반을 닦은 여성운동의 대모요, 가정문제를 연구하고 후학들을 가르친 학자요, 서민들을 위해 높기만한 '법'의 벽을 앞장서 허물어 주었던 사회운동가였던 이태영 선생. 그는 '하나님과 나라와 남편과 여성'을 똑같이 지극히 섬기고 사랑한 이였고 가정과 사회, 어느 한 쪽에 치우침없이 여성으로서 최선의 길을 보여준 20세기 한국 여성을 대표한 표상이기도 했다.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그의 빈소에는 김대중대통령 내외를 비록, 무려 8천명이 넘는 추모객이 마치 친부모나 누이를 잃은 것처럼 슬퍼하며 가신 님의 뜻을 기렸다. 1914년 8월 10일 평안북도 운산군 북집읍 진동에서 2남 1년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평양정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북진읍 광동보통학교에서 잡시 교사생활을 하다가 32년 이화여전 가사과에 입학했다. 36년 이화전문학교 가사과를 수석졸업하고 평양여자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그는 평야의 한 교회에서 일생의 반려자이자 동지인 정일형박사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둘은 '두 줄의 짚으로 새끼를 꼬듯 서로 번갈아 도와가면서' 46년을 해로했던 실로 의좋은 부부였다.
결혼 10년동안 아이 넷을 낳고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던 남편의 옥바라지며 홀로 되신 시어머니 부양 등 뒷일을 돕던 이태영 선생은 부인의 남다른 재능을 안타깝게 여긴 남편 정일형씨의 권유로 해방직후인 1946년 만학의 나이인 32세에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여성으로서는 최초였다. 6년 뒤인 52년 역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제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그러나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이태영선생이 야당 인사인 정일형 박사의 아내라는 이유로 판사임용을 거부, 함께 사법관 사보활동과 서울지방법원 및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실무 수습하던 동기생들은 모두 판검사로 임용되는 가운데 그는 그 혜택에서 낙오된 채 이 땅 최초의 여성변호사가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 땅의 가난한 이웃들을 의한 하늘의 배려였던 듯, 이 일을 계기로 이태영 선생은 불우한 여성들과 소외받은 이웃들을 위한 본격적인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가 청원서와 진정서 제출 등을 통해 평생을 두고 추진해 온 가족법 개정운동을 시작하는 것도 이때부터다.
그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전신이 된 여성법률상담소를 세운 것은 1956년. 이 상담소는 이 땅의 불우하고 상처입고 소외받은 여성들을 위해 최초로 탄생한 법률구조기관이었고 그후 10여년간 이태영선생은 자신의 인생을 이 상담소에 바치게 된다. 1966년 8월 가정법률상담소로 이름을 바꾼 상담소는 여성의 권익뿐 아니라 남녀 모두의 권익을 위한 인권기관으로 자리매김해 사단법인이 되었고 1976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로 다시 이름을 바꿔 공익법인으로 탈바꿈했다.
76년 벽돌 한장 한장이 이태영 선생의 피와 땀과 수고를 모아 건립된 서울 여의도 여성백인회관 내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창설이념은 이태영 선생이 한평생 보듬어온 이념을 대변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인간의 존엄성과 법 앞에 만민평등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가난한 자, 억울한 자, 불행한 자, 약자 등 번민하는 이웃의 편에 서서 이들의 인권옹호에 필요한 모든 법률적 구조사업을 무료로 제공하고 인권을 회복함으로써 가정의 평화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오랜 경험을 통해 가정의 평화는 곧 사회의 평화로 이어진다는 결론을 얻은 상담소는 그것을 실현시키는 데에도 목적을 둔다.”
남녀의 상속지분 차별을 없애고 이혼시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하는 등의 내용을 지닌 89년 가족법 개정을 앞장섰던 일을 일생에서 가장 보람있는 일로 꼽곤 하던 이태영 선생. 그는 3차 가족법이 개정된 직후 이렇게 말했다.
"5백년 묵은 인간차별의 벽이 무너졌습니다… 주위의 모든 분들이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으니 축하한다고 말해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성이 새로운 것을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제 자리’를 찾았을 따름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사람노릇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더군다나 가족법이 ‘여성법’은 아니지 않습니까. ‘가족 모두의 법’이잖습니까.”
학구파였던 그는 57년 ‘한국이혼제도 연구’로 서울대에서 석사, 69년 55세의 나이에 같은 연구로 서울대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여성을 위한 법률상식> <내 인생을 살련다> <북한의 여성생활> <차라리 민비를 변호함> <쪽박으로 한강물을> <나의 만남 나의 인생> 등 많은 책을 펴냈다. 63년부터 71년까지 이화여대에서 교편을 잡아 법정대 교수 겸 학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제자 사랑이 남달랐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편 74년 11월 민주회복 국민선언, 76년 3·1 민주구국선언(일명 3.1 명동사건) 등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 와중에 김대중 대통령 내외와 맺은 인연은 각별하다. 남편 정일형씨가 71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이래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대통령 내외와 남다른 인연을 맺게 되었던 것. 사람들은 그를 “정치인 김대중에게 거침없이 ‘싫은 소리’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중의 하나였다”고 회고한다. 그 각별한 인연으로 외아들 정대철 의원은 현재 국민회의 부총재 일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국내에서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많은 활약을 해 한국 여성들의 명예를 드높였다. 여성해방운동과 민주화운동 등에 헌신한 공로로 막사이사이상, 유네스코 인권교육상, 국민훈장 무궁화장, 제1회 법을 통한 세계평화상, 제3회 세계법률구조상, 세계감리교 평화상을 받은 것을 비롯, 91년에는 제1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에 선정됐고, 95년에는 제1회 자랑스런 이화인상을 받았다.
언제나 단정한 몽당한복치마 아래 낡은 구두를 신고 세계를 누비며 다니던 그, 노년에도 위엄 가득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던 그는 느닷없이 찾아든 치매로 한동안 고생하다가 세상을 떴다. ‘고향인 평북 운산 북진읍 뒷동산에 있는 어머니의 묘소를 꼭 가보고 싶다’는 말년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그가 생전 그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던 남편 정일형씨가 묻힌 묘 옆에 안장됐다.
치매에 걸리기 직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대한 애정과 배려로 자신의 맏사위인 김흥한 변호사를 제2대 소장에 앉힌 이태영 선생. 우리나라에 합동법률사무소를 처음으로 개업했으며 최초의 국제변호사이기도 한 김홍한 소장은 이태영 선생과 서울법대 동기생으로 평생 그림자처럼 그를 도와왔고 법률구조사업을 제안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갔다. 하지만 한국가정법률상담소와 함께 이태영 선생이 가르친 인간존엄, 조국사랑, 법의 서민화 정신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삶의 뿌리가 되어 앞으로도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돈이나 사람들이나 권력으로 지탱하는 사업은 결코 장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번민하는 이웃과 함께 오로지 사랑으로 지탱해온 우리의 사업은 그 생명이 영원할 것입니다.” 라는 그의 말처럼.
<정리/이선희(신방 85)><정리/이선희(신방 85)>
1998년 12월 17일 우리는 불우하고 소외받는 여성들의 큰 어머니 이태영 박사를 잃었다. 국내 첫 여성 변호사로서 가정법률상담소를 세우고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인습에 맞서 평생 싸워온 선각자 이태영 선생. 그가 84세를 일기로 서울 봉원동 자택에서 별세한 것이다.
우리나라 남녀평등의 기반을 닦은 여성운동의 대모요, 가정문제를 연구하고 후학들을 가르친 학자요, 서민들을 위해 높기만한 '법'의 벽을 앞장서 허물어 주었던 사회운동가였던 이태영 선생. 그는 '하나님과 나라와 남편과 여성'을 똑같이 지극히 섬기고 사랑한 이였고 가정과 사회, 어느 한 쪽에 치우침없이 여성으로서 최선의 길을 보여준 20세기 한국 여성을 대표한 표상이기도 했다.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그의 빈소에는 김대중대통령 내외를 비록, 무려 8천명이 넘는 추모객이 마치 친부모나 누이를 잃은 것처럼 슬퍼하며 가신 님의 뜻을 기렸다. 1914년 8월 10일 평안북도 운산군 북집읍 진동에서 2남 1년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평양정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북진읍 광동보통학교에서 잡시 교사생활을 하다가 32년 이화여전 가사과에 입학했다. 36년 이화전문학교 가사과를 수석졸업하고 평양여자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그는 평야의 한 교회에서 일생의 반려자이자 동지인 정일형박사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둘은 '두 줄의 짚으로 새끼를 꼬듯 서로 번갈아 도와가면서' 46년을 해로했던 실로 의좋은 부부였다.
결혼 10년동안 아이 넷을 낳고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던 남편의 옥바라지며 홀로 되신 시어머니 부양 등 뒷일을 돕던 이태영 선생은 부인의 남다른 재능을 안타깝게 여긴 남편 정일형씨의 권유로 해방직후인 1946년 만학의 나이인 32세에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여성으로서는 최초였다. 6년 뒤인 52년 역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제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그러나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이태영선생이 야당 인사인 정일형 박사의 아내라는 이유로 판사임용을 거부, 함께 사법관 사보활동과 서울지방법원 및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실무 수습하던 동기생들은 모두 판검사로 임용되는 가운데 그는 그 혜택에서 낙오된 채 이 땅 최초의 여성변호사가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 땅의 가난한 이웃들을 의한 하늘의 배려였던 듯, 이 일을 계기로 이태영 선생은 불우한 여성들과 소외받은 이웃들을 위한 본격적인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가 청원서와 진정서 제출 등을 통해 평생을 두고 추진해 온 가족법 개정운동을 시작하는 것도 이때부터다.
그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전신이 된 여성법률상담소를 세운 것은 1956년. 이 상담소는 이 땅의 불우하고 상처입고 소외받은 여성들을 위해 최초로 탄생한 법률구조기관이었고 그후 10여년간 이태영선생은 자신의 인생을 이 상담소에 바치게 된다. 1966년 8월 가정법률상담소로 이름을 바꾼 상담소는 여성의 권익뿐 아니라 남녀 모두의 권익을 위한 인권기관으로 자리매김해 사단법인이 되었고 1976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로 다시 이름을 바꿔 공익법인으로 탈바꿈했다.
76년 벽돌 한장 한장이 이태영 선생의 피와 땀과 수고를 모아 건립된 서울 여의도 여성백인회관 내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창설이념은 이태영 선생이 한평생 보듬어온 이념을 대변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인간의 존엄성과 법 앞에 만민평등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가난한 자, 억울한 자, 불행한 자, 약자 등 번민하는 이웃의 편에 서서 이들의 인권옹호에 필요한 모든 법률적 구조사업을 무료로 제공하고 인권을 회복함으로써 가정의 평화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오랜 경험을 통해 가정의 평화는 곧 사회의 평화로 이어진다는 결론을 얻은 상담소는 그것을 실현시키는 데에도 목적을 둔다.”
남녀의 상속지분 차별을 없애고 이혼시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하는 등의 내용을 지닌 89년 가족법 개정을 앞장섰던 일을 일생에서 가장 보람있는 일로 꼽곤 하던 이태영 선생. 그는 3차 가족법이 개정된 직후 이렇게 말했다.
"5백년 묵은 인간차별의 벽이 무너졌습니다… 주위의 모든 분들이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으니 축하한다고 말해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성이 새로운 것을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제 자리’를 찾았을 따름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사람노릇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더군다나 가족법이 ‘여성법’은 아니지 않습니까. ‘가족 모두의 법’이잖습니까.”
학구파였던 그는 57년 ‘한국이혼제도 연구’로 서울대에서 석사, 69년 55세의 나이에 같은 연구로 서울대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여성을 위한 법률상식> <내 인생을 살련다> <북한의 여성생활> <차라리 민비를 변호함> <쪽박으로 한강물을> <나의 만남 나의 인생> 등 많은 책을 펴냈다. 63년부터 71년까지 이화여대에서 교편을 잡아 법정대 교수 겸 학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제자 사랑이 남달랐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편 74년 11월 민주회복 국민선언, 76년 3·1 민주구국선언(일명 3.1 명동사건) 등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 와중에 김대중 대통령 내외와 맺은 인연은 각별하다. 남편 정일형씨가 71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이래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대통령 내외와 남다른 인연을 맺게 되었던 것. 사람들은 그를 “정치인 김대중에게 거침없이 ‘싫은 소리’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중의 하나였다”고 회고한다. 그 각별한 인연으로 외아들 정대철 의원은 현재 국민회의 부총재 일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국내에서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많은 활약을 해 한국 여성들의 명예를 드높였다. 여성해방운동과 민주화운동 등에 헌신한 공로로 막사이사이상, 유네스코 인권교육상, 국민훈장 무궁화장, 제1회 법을 통한 세계평화상, 제3회 세계법률구조상, 세계감리교 평화상을 받은 것을 비롯, 91년에는 제1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에 선정됐고, 95년에는 제1회 자랑스런 이화인상을 받았다.
언제나 단정한 몽당한복치마 아래 낡은 구두를 신고 세계를 누비며 다니던 그, 노년에도 위엄 가득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던 그는 느닷없이 찾아든 치매로 한동안 고생하다가 세상을 떴다. ‘고향인 평북 운산 북진읍 뒷동산에 있는 어머니의 묘소를 꼭 가보고 싶다’는 말년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그가 생전 그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던 남편 정일형씨가 묻힌 묘 옆에 안장됐다.
치매에 걸리기 직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대한 애정과 배려로 자신의 맏사위인 김흥한 변호사를 제2대 소장에 앉힌 이태영 선생. 우리나라에 합동법률사무소를 처음으로 개업했으며 최초의 국제변호사이기도 한 김홍한 소장은 이태영 선생과 서울법대 동기생으로 평생 그림자처럼 그를 도와왔고 법률구조사업을 제안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갔다. 하지만 한국가정법률상담소와 함께 이태영 선생이 가르친 인간존엄, 조국사랑, 법의 서민화 정신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삶의 뿌리가 되어 앞으로도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돈이나 사람들이나 권력으로 지탱하는 사업은 결코 장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번민하는 이웃과 함께 오로지 사랑으로 지탱해온 우리의 사업은 그 생명이 영원할 것입니다.” 라는 그의 말처럼.
<정리/이선희(신방 85)><정리/이선희(신방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