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도 性차별하나] ①'처=무능력자' 일본법 베껴 '불평등' 싹텄다
박현익 기자
입력 2018.08.21 15:46 | 수정 2018.09.01 23:44
"일제 시대, 일본 법을 받아들이면서 스며든 성차별 요소들을 제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양성평등은 개선(改善)의 역사를 거쳐왔지만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다."
성차별에 관한 우리 법의 '빈틈'을 살피기 위해, 먼저 배병일(61·사진)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만났다. 우리 법이 남성중심적인가, 여성을 차별하는가 하는 쟁점을 묻기 위해서다. 그는 우리 법의 '남성중심적' 틀이 조선시대가 아닌 일제 시대의 잔재라고 평가했다.
-최근 홍대 몰카 사건,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 등으로 법의 성차별 문제가 논란이다. 법 속에 성차별적 요소는 언제부터, 어떻게 자리잡게 된 것인가.
"조선시대에는 성리학과 주자가례를 신봉하면서 남녀차별적인 풍속이 성행했다고 하지만, 최근에 발굴되고 있는 토지매매 문서인 문기나 소송서류인 소지 등에서 처(妻)가 매도인이나 매수인으로 되어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그때도 실제 생활에서는 여성에게 일정의 권한이 주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조선인에게 적용할 기본법규인 조선민사령을 1912년 공포했다. 이를 통해 처(妻)를 무능력자로 규정하고 있던 일본의 민법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됐다. 이때를 법률 성차별의 시작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1913년 조선고등법원 판결에서도 호주(戶主)의 유산에 대해 여성의 상속권은 전혀 인정되지 않았다. 이처럼 일제의 법률과 법원은 일제강점기 36년간 철저하게 여성차별적 법률로 존재했다."
-일본의 성차별적 법률은 언제까지 이어졌고, 얼마나 영향을 미쳤나.
"일본 민법은 1960년 1월 1일 우리 민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그러니까 1959년 12월 31일까지 형식상 우리나라에 존재하면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물론 처의 행위능력에 관한 규정은 1947년 9월 2일에 선고된 대법원 판결로 남녀평등에 기초해 처(妻)의 무능력제도를 헌법재판적 판단으로 폐기했지만, 생활법의 뼈대인 민법 분야에서 일제의 성차별적 규정 여파는 매우 길었다.
이승만 정부는 일제의 법률을 거의 대부분 의용(依用·다른 나라의 법률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차별적 요소가 많았다. 당시는 법학자와 법률가들이 태부족인데다 6·25 전쟁 등을 겪어 일단 외국 법을 번역이라도 해서 마련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이후 박정희 정부도 국가의 기초가 되는 많은 법률을 만들기는 했지만, 일본법을 번역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성차별적 법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언제부터 바뀌기 시작했나. 양성평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계기가 있나.
"민법 시행과 동시에 이태영(1914~1998·한국가정법률상담소 명예이사장) 선생을 중심으로 한 여성계 법 개정 운동은 시작됐다. 이 선생은 1956년 이미 '여성법률상담소'를 만들었다. 성차별적 법과 규정을 바꿔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한 결과 1978년 민법 상속편에서 성차별적 해소가 다소 이뤄졌다. 이어 2005년 민법에서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사실상 우리나라 가부장주의의 뿌리가 뽑혔다고 본다. 양성평등에 큰 기반이 됐다."
서울대 법학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남편 정일형 박사와 함께한 이태영 박사
서울대 법학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남편 정일형 박사와 함께한 이태영 박사
고(故) 이태영 선생은 한국 최초의 여성 법조인이다. 1952년 제2회 사법고시에 합격하고도 야당 정치인인 정일형 전 신민당 고문의 아내이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판사 임용이 거부됐다. 이후 변호사로 활동하며 성차별적 가족법 개정과 여성인권 보호를 위해 일생을 바쳤다.
-호주제 폐지는 상징적인 의미 아닌가. 실제 어떤 점이 달라졌나.
"양성평등의 물결은 재산, 일자리뿐만 아니라 가부장제의 뿌리로까지 스며들었다. 그 결실이 2005년 호주제 폐지다. 헌법재판소는 아들이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아버지의 사망 뒤 자동으로 호주가 되는 것은 남성우월주의라고 비판하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국회는 이를 받아들여 법을 개정했다. 호주제 폐지와 함께 자녀가 친아버지와 관계가 단절된 뒤 계부의 성(姓)을 따르고, 친생자와 같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친양자 제도'도 도입됐다. 자녀의 성(姓)과 본(本)도 부모가 협의하면 어머니의 것을 따를 수 있게 됐다. 또 그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종원(宗員·선조와 성, 본을 같이 하는 후손)의 자격을 성인 남자로만 제한했던 관습을 깨는 판결을 내놨다. 여성이라도 성년이 되면 당연히 종중의 후손 자격이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호주제 외에 성차별 문제를 개선한 법률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면.
"1996년 7월부터 '여성발전기본법'(현 양성평등기본법)이 시행됐다. 이 법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남녀평등을 촉진하고 여성의 발전을 위해 제정됐다. 여성의 참여가 부진한 분야에서 여성 참여를 늘일 수 있도록 제도적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나 공공기관의 각종 위원회의 구성에 여성의 참여가 확대됐다. 적어도 공공부문에서는 여성의 채용이나 승진 등에서 괄목할만한 효과가 있었다. 실제, 김대중 정부 때 이희호 여사의 노력으로 국공립대학에서 여성교수의 쿼터제가 실시됐다."
(왼쪽) 2003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호주제 폐지 반대 전국 유림 궐기대회'. (오른쪽) 호주제 폐지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환호하는 여성단체 대표들.
(왼쪽) 2003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호주제 폐지 반대 전국 유림 궐기대회'. (오른쪽) 호주제 폐지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환호하는 여성단체 대표들.
-지금은 어떤 상황인가. 현행 법률 속에도 여전히 성차별 요소가 남아있다는 지적이 많다.
"2005년부터 남녀차별을 개선한다는 취지로 이뤄진 입법 또는 개정된 법규정은 300건 가까이 된다. 30여개 법률을 개정했고, 시행령과 시행규칙도 230여개 손봤다. 2007년 호적법이 폐지되고 제정된 '가족관계의 등록법'은 최대 성과다. 다만 대부분 입법과 개정이 깊은 고민을 토대로 이뤄지기 보다는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임시방편 땜질식으로 처리돼 왔다.
이에 따라 현행 법률은 성차별적 문제를 외관상 상당부분 해소한 모습이다. 하지만 성범죄 관련 처벌규정이나 부부별산제, 부성원칙, 친양자 입양의 법적 인정 등 여러 법률 속에 성차별 요소가 남아 있고, 법률 전문가들의 인식도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남아 있다. 법의 성차별보다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이 사회적 저변에서의 성차별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양성평등에 대한 필요성 등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있거나 특히 공공부문 등 우리 사회 전반에는 ‘성 감수성’에 적합하지 않은 시책이나 조치, 관행 등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공공부문에서의 성차별 문제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아직도 언론에서는 '최초의 여성'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보도하지 않나. 사회관행적으로 양성평등은 멀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공부문의 각종 위원회 등을 구성할 때 아직도 여성의 참여는 강제적인 쿼터제를 통해서만 실시될 뿐이다. 남성위주라는 것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특히 여성의 임용이나 채용, 승진 등에 있어서는 걸림돌이 많다.
정치권을 보자. 여성 정치지도자들이 간혹 있었지만 주로 남성 정치인에 의해 발탁돼 활동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여성 정치인 스스로 크기 힘든 구조로 돼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 주요 경제단체에서 지금까지 여성단체장이 나온 건 거의 없다. 별도의 여성경제단체가 조직되는 이유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고 본다."
지난 18일 성차별·성폭력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안희정은 유죄다’‘사법부도 유죄다’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지난 18일 성차별·성폭력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안희정은 유죄다’‘사법부도 유죄다’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 하나. 바람직한 방향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실태파악부터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법과 제도, 관행 등에서 성차별적인 요소를 찾아내야 대안이 나오는데 현재는 상황 파악조차 안돼 있는 초기단계다. 양성평등에 관한 입법상황, 사회적 관행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가 필요하다. 힘들고 어렵지만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여성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의사결정권을 갖는 것)를 이루기 위해서 선행돼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법률적 개선에 앞서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서는 여성가족부나 양성평등교육진흥원, 여성정책연구원 등이 앞장 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양성평등 관련 기관에 보다 많은 힘을 실어줘 주도적으로 개선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여성 고용을 늘리는 할당제 외에도 여성이 경영하는 기업에 세금을 대폭 감면해주거나, 여성근로자들의 세제혜택을 크게 확대해 나가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법과 사회는 결국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니까 이런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면 법률 속에 숨어있는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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